늙은백수여자사람

혼자 돌아다니는 일 외에, 서울에 온 뒤로 거의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초반에는 몸이 너무 안좋아서 외출이 힘들었고, 몸이 좀 나아졌을때는 논문마감 스트레스에 나가도 너드처럼 노트북들고 조용한 곳에 가거나, 매달 미술관 구경가는것 (교양넘치는 일이 아니고 '해야하는일'이었다 ㅠㅠ) 그리고 엄마랑 마트가는 일이 전부였다. 친구들은 너 그러다가 왕따된다, 성격이상하다 난리였지만 그래도 나와 오래 알고 지낸 그녀들은 내 괴상한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이해해주리라 혼자 바라고 있었다.

무슨 팔자 늘어지게 공부하면서 아주 노벨상 타는듯이 온갖 폼은 다 잡고 스트레스를 다 받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이게 해보면 안그렇더라. 우선 몸이 너무 망가졌었고, (다행히도 재활의학과에 갔더니 하늘에 감사하고 살면서 열심히 걷고 운동하라고만 했다 흑 ㅠㅠ) 그리고 나의 어마어마한 수퍼바이저 세명은 쉴새없이 나를 쪼아대고 까대고 밟았다. 뭐 밟히고 까이는건 익숙해졌지만 단 한가지 익숙해지지 않는건 그로인해 생기는 자괴감이었다.

가뜩이나 소심한데 계속 까이니까, 나중에는 정말 '아 난 안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한 줄을 써도 걱정이고, 수정을 하면서도 초조하고, final 공개 세미나를 하고도 불안해서 잠도 못잤다. 그러다가 결국 논문 제출 사인이 떨어졌고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했다.

매일매일 피말리는 마음으로 학교 리서치센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클릭하는게 아주 모닝루틴 이었으니까...
그렇게 6개월이 걸렸다.
6개월이 걸려서 1차 논문심사가 나왔다.
중요한 건 1차라는 것.

수정사항을 전달받았고, 채점관 3명중에 2명은 상상도 못했던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나머지 한명은 악평에 악평을 더했다. 내가 싫은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점에서 벗어난 무조건 깎아내리기 식의 평이었다. 주제와도 관계없고 내용을 깐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 의견을 주루룩 늘어놓은 비평 아닌 비난.

나는 그런거에 상처를 거의 안받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학교 리서치센터에서와 수퍼바이저가 그 리뷰는 읽지도 말라고 했다. 논점에서 벗어난 무조건적인 비난은 절대 채점이 아니라면서.
뭐 저는 늘 까여서 덤덤합니다만...

그렇게 일년이 훅 갔다.
놀기싫어 놀지않은것도 아니고, 사람이 싫어 나가지 않은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너무 마음이 복잡했다. 지금도.
집에 끓는 물을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나온듯한 기분?

수정을 해야하는데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이번학기에 하는 일이며 학회에 기웃거리고 하느라 시간이 그냥 지나갔다.
이번달은 수정을 해야한다.

학위 받는다고 누구말대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스펙을 쌓으려고 공부하지 않았다. 하고싶은 일을 하고 싶었던것 뿐이다. 그리고 하고싶은 일을 앞으로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나는 거창한 타이틀도 그리고 대출받아 산 내집 따위 없다. 또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도 아직 없고, 거기에 남편도 그리고 자식도 없는 자유로운 싱글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노처녀라고 하고, 백수라고 하고 한심하다고 까지 한다. 그리고 늘 끝에는 '아이고 언제 시집가고 애낳고 돈벌어?'

결혼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하지말라고 해도 할것이고, 자식은 내뜻대로 되는게 아니라 장담은 못하겠고, 돈은 벌겠지,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벌고있지만 그게 프리랜서라 매달 입금되진 않아요. 그래도 엄마아빠 용돈도 드리고 뭐 커피에 빵도 사먹고 그럽니다.

결혼과 안정된 직장이 없이 '개나소나' 받는다는 그 phd받으려고 공부하는 나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마음은 이해한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니까.

하지만, 뭐 인생이 지금 끝인가? 이제 시작인데 뭐. 준비 다 하고 이제 미친듯이 뛰고 쉬고 놀고 먹고 사고 나눠주고 즐기면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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