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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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렸었지 뭘 몰랐었지
설레는 젊은 하나로 그땐 그랬지
참 느렸었지 늘 지루했지
시간아 흘러라 흘러 그땐 그랬지
시린 겨울 맘 졸이던 합격자 발표날에 부둥켜 안고서
이제는 고생 끝 행복이다 내 세상이 왔다 그땐 그랬지
참 세상이란 만만치 않더군
사는 건 하루 하루가 전쟁이더군
철없이 뜨거웠던 첫사랑의 쓰렸던 기억들도
이젠 안주거리
딴에는 세상이 무너진다 모두 끝난거다 그땐 그랬지
참 옛말이란 틀린게 없더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지더군
참 세상이란 정답이 없더군
사는 건 하루하루가 연습이더군


요즘 친구가 선물로 준, 김동률 콘서트 앨범을 계속 듣는중이다.
고등학교 교복입고 워크맨이며 씨디플레이어에 노래를 듣던 생각이며
또, 대학 가는 일이 가장 큰 일인줄만 알았던 그떄의 기억
사랑이 끝나면 모든게 끝날것 같았던 그 기억
그때 들었던 이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 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보단 지금이 더 공감이 된다고나 할까?
가슴이 아프도록 공감이 되었던 그때와는 달리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 맞어맞어' 식의 공감으로 바뀐게 다른 점 이라고나 할까.

몇 년 더 지나면 또 다른 그러나 같은 공감이 생기겠지?

고마운 김동률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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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밤에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들을때 정말 좋아.
올해는 꼭 김동률 공연에 갈 수 있게 되기를...
ㄲ ㅑ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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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와 김동률




전람회, 1993년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고상한' 오빠부대를 이끈 장본인들.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했던 여고생 아니 여'고딩' 이었던 나를 비롯한
우리반 아니 우리학교 거의 모든 여고딩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고
또 충분했던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이뤄졌던 전람회.
야자시간에 그리고 아침자율학습 시간에도 전람회 오빠들의 노래가 듣고 싶어서
몰래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혼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농구스타 우지원 문경은 이상민등을 필두로 시작되었던 여고딩들의 Y대 사랑은
전람회로 인하여 더 커져만 갔다. Y대에 가면 저런 오빠들이 수없이 많을 거라는
온갖 상상을 다 해가며 우리는 야자를 열심히 했지.
나는 여고를 나와 다시 여대에 가는 일이 발생하였지만 그래도,
대학로 횡단보도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뭔가 모를 광채가 바로 그 멋진 오빠중에 하나인
서동욱 이었음을. 그 감동을. 아직도 잊지는 못하지.암.그렇고 말고. ㅎㅎㅎ

아무튼, 그 당시 실제로 Y대로 진학했던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전람회는 커녕 전람회 아류 박람회라도 닮은 오빠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들과 함께,
전람회는 그저 전람회로서 레전드 였음을 여고딩에서 여대딩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서동욱은 없지만 김동률은 아직도 전혀 아저씨 같지 않은 '오빠'의 모습으로
늘 79년생, 서른을 갓 넘은 우리 마음에 남아있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에세이 쓰다가 김동률의 옛 음악이 듣고 싶어서 아이튠즈를 켜다가
옛생각까지 덤으로 불러오는 블로그 포스팅을 하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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